U.F.O - 공귀현 트렌치코트


*. 스포일러 있습니다.

 야심찬 영화입니다. 영화는 배경 설명 없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오물이 묻어있는 교복을 입은 성규는 야산에서 깨어나 학교로 갑니다. 그는 이미 형사에게 취조를 받고 있던 친구들과 합류합니다. 친구들은 형사에게 자신들이 U.F.O를 보러 갔었고 실제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합니다. 형사가 믿지 않자 가슴팍을 열어 이상한 문양으로 생긴 흉터를 보여줍니다. 흥미진진합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나 고등학생들이 U.F.O 출몰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는 등의 설정만 봐도 관객은 이 영화가 단순히 퍼즐을 푸는 영화는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U.F.O>는 미스테리 장르 토대 위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영화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만큼 흥미로운 설정들도 많습니다. 사건 당시 친구들과 함께 있었지만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규는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또 다른 긴장의 축을 형성합니다. 서로 친분이 없는 인물들이 U.F.O 목격 사건으로 인해 연대감을 가진다는 설정이나 주인공들 중 두 명은 남들에게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고 있는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순규의 형이 등장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탐정 역할을 한다는 설정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가능성들을 가진 이 영화의 설정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도 못합니다. 미스테리로서 이 영화는 눈치 빠른 관객은 충분히 예측할 만한 반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측가능 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 효과나 논리적 타당성에서도 의문을 남기는 반전입니다. 

 반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두 번의 시네마 톡을 지켜보니 많은 관객들이 이 결말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불편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나쁜 결말인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반전이 나쁜 이유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위해 한 캐릭터가 도구화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U.F.O 출몰지역 고등학생인 지현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감독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무참히 희생당합니다. 이에 대해 공귀현 감독은 ‘안 되는 걸 알지만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도구화 되는 캐릭터가 생기기 마련이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실수에도 넘어갈 수 있는 실수가 있고 결정적인, 치명적인 실수가 있듯이 도구화에도 급이 있습니다. 지현 캐릭터의 도구화는 눈감아 줄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지현이 죽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소녀를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밤에 야산으로 끌고 와서는 굳이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게 만들곤 어설픈 이유를 갖다 붙여 죽입니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주인공이 아닌 다른 청소년 캐릭터를 무참히 희생시키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동의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장 영화로서는 어떨까요? <U.F.O>에는 각기 나름의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편입니다. 특히 기쁨 역의 김창환 배우는 다소 과장된 캐릭터를 순수한 매력으로 호감가게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역시 설정만 있을 뿐 인물들 간의 어떠한 시너지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부대끼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 적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상에서 주인공들이 외계인이 출몰한다는 작은 도시에 가는 일은 중심 사건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는 없다시피 합니다. 산에 올라가서 자리 잡고 술 마시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좋아하고 오마주도 했다는 <스탠 바이 미>를 예로 보면, 이 영화는 아이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정서가 축적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개의 성장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인물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서로 부대끼다가 끝내 인생의 한 지점을 통과하고 성정했다는 느낌을 주려면 일정 이상의 물리적 시간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U.F.O>는 현재 시점에서 사건을 더듬어 가는 일에 비중을 많이 두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만들지 않아 성공적인 성장 영화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을 가지지 못합니다.
 
 젊은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고 초저예산으로 촬영된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매끈하게 만들어진 영화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역으로 투박하더라도 힘 있게, 논쟁적일지라도 강렬하게 표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의 진짜 아쉬운 점은 동의하기 힘든 결말이 아니라 부족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U.F.O>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비해 너무 밍숭맹숭하게 찍혀있습니다. 쇼트들도 대체로 무난하게만 설계되어있습니다. 때문에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들이 많은 영화임에도 단 한순간도 팽팽한 긴장이나 폭발을 전해주지 못합니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가진 영화지만 음산한 분위기의 음악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장 참혹한 순간 서정적인, 가사까지 있는 노래를 쓰는 패기를 보여줍니다. 이는 선택 가능한 연출 전략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무드를 잡아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역으로 찌르는 전략은 성공적일 수가 없습니다. 

 시네마톡 말미 ‘감독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영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김영진 평론가의 농 섞인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닙니다. 감독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영화 속에서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U.F.O>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이 영화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생깁니다. 폭탄은 엄청 심어놨는데 정작 제대로 터지는 폭탄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폭탄을 바지런히 심은 열정은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감독이 가진 풍부한 지식과 장르적 관심, 영화적 야심이 다음번엔 확실하게 폭발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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