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풀 - 하라 케이이치 트렌치코트


 1인칭 시점의 사용과 자막으로 처리된 주인공의 대사, 몽환적이고 음산한 공간,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소년의 등장 그리고 그가 전하는 과제. 이렇게 관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인상적인 설정을 지닌 도입부를 지나면 관객에겐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주인공은 누구이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 주인공의 영혼이 들어가게 되는 마코토란 소년은 왜 자살 했는가?

 흥미진진한 시작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시종일관 스타일리쉬하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컬러풀>은 주인공이 현실로 내려온 후 부터 사실적이고 서정적인 화면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중학생 마코토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물론 관객과 주인공에게 주어진 정보의 양이 같기 때문에 다른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긴 합니다. ‘이렇게 화목해 보이는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저 아이와 마코토의 관계는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 주어진 질문의 답이 주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순간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도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지 않고 마코토로 살아가는 일에 집중을 합니다.

 다소 길고 잔잔하게 그려지는 일상 장면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심심해 보이는 장면들엔 다양한 복선과 상징이 촘촘하게 깔려 있습니다. 이 복선과 상징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실체가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먹는 장면의 활용입니다. <컬러풀>에는 먹는 장면이 무수히 많이 등장합니다. 먹는 일은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그 자체로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마코토의 몸에 들어간 주인공은 퇴원 후 마코토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비밀을 알고부터는 먹기를 거부합니다. 간신히 끼니만 이어갑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소코가 사온 간식들도 먹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히로카가 주는 군것질 거리는 잘도 받아먹습니다. 사오토메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의 우정이 궤도의 오르는 순간이 함께 치킨과 호빵을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 작품에서 먹는 행위에 큰 의미가 부여되어있다고 느끼게 한 결정적인 장면은 낚시 시퀀스입니다. 마코토 아버지는 낚시터에서 도시락을 꺼내지만 주인공은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지만 사오토메와의 관계로 인해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려있던 그는 마코토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엽니다. 그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강한 허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살고 싶습니다. 꼬로록 소리를 들은 마코토 아버지는 그를 라멘집에 데려갑니다. 주인공은 맛있게 라멘을 먹습니다. 거의 2인분을 먹어치웁니다. 한동안 마코토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지 않을 때 자기 방에서 혼자 마지못해 밥을 먹던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가족들의 진심을 확인한 후 함께 전골을 맛있게 먹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함께 무언가를 맛있게 먹은 인물들은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컬러풀이란 제목도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와 온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이 사람은 달라’식의 환상을 품는 일은 위험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이 불완전성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실망이 아닌 이해의 지평이 열리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불균질하고 모순된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주인공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이를 깨닫습니다. 컬러풀은 부정적인 느낌의 불완전성을 다른 시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컬러풀이라는 표현을 통해 불완전성에서 오는 불균질함과 모순은 부정되지 않고 긍정됩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심영섭 평론가님의 시네마 톡에서도 많이 언급됐지만 이 영화에는 이외에도 흥미로운 설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컬러풀>은 얼핏 보면 단조롭고 잔잔하게 느껴지지만 그 안의 결은 결코 만만치 않은 영화입니다. 그 세세한 결만큼 후반부에 묵직한 감동도 안겨줍니다.

 이 영화에서 전하려고 하는 같이 음식을 먹어주는, 삶의 버팀목이 되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역으로도 적용됩니다. <건축학개론>의 광고 카피를 빌리자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의 버팀목입니다. 이것이 <컬러풀>이 우리에게 천천히, 그만큼 신중한 걸음으로 다가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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