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즈 킹덤 - 방주에 올라타기 트렌치코트

웨스 앤더슨의 7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캐릭터, 분위기, 편집 리듬, 카메라 앵글, 프로덕션 디자인에 기반을 둔 작품을 만드는 감독입니다. 때문에 팬도 많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마틴 스콜세지도 극찬했던 <바틀 로켓>으로 데뷔해 <러쉬모어>, <로얄 테넨바움>을 만들면서 평단의 지지와 자신의 마니아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다소 산만했던 <스티븐 지조의 해저 생활>을 거쳐 <다즐링 주식회사>에 이르면 그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됩니다. 특히 <다즐링 주식회사>는 웨스 앤더슨의 아기자기한 스타일만 남고 이야기는 공허하게 처리된 느낌이 들어 그가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작품 세계가 여전히 매력적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영적이고 심오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감독이 아닙니다. 그의 매력은 독특한 인물이 만들어가는 엉뚱한 사건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극대화해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이는 <문라이즈 킹덤>을 통해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역시 거창한 주제를 가진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편의 소동극입니다. 웨스 앤더슨식의 엉뚱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해 엉뚱한 계획을 세웁니다. 샘과 수지의 계획은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10대 초반의 소년, 소녀가 단 둘이 어디가서 어떻게 살겠다는 겁니까? 실제 영화에서도 그들이 탈출 이후 어떻게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10대 아이들을 데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할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텐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관건입니다.

이 작품은 예측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자세히 말하면 이야기의 큰 틀은 예측 가능해도 디테일들은 예측 불허입니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디테일들에 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은 한 장면 한 장면 캡쳐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질 정도로 예쁜 장면들이 많습니다. 인물들의 행동도 절묘한 음악도 매력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마 이 작품을 말할 때 수없이 나오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스 앤더슨은 원래 이런 게 특기인 감독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장기는 그가 작은 이야기를 할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앞서서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이야기라고 해서 정서적인 감흥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스케일과 주제와 상관없이 그 작품이 전달하려고 했던 정서적인 감흥이 수반되지 않으면 감독의 코드들은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제겐 <다즐링 주식회사>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렇다면 <문라이즈 킹덤>이 훌륭한 이유는 ‘웨스 앤더슨 코드’ 때문만은 아닙니다. 단순히 인물과 사건들이 귀엽고 화면의 색감이 예쁘고 인물을 대각으로 잡지 않는다고 영화가 훌륭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웨스 앤더슨이 특정 주제에서 출발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서적 응집력을 만들 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 역시 굳이 이야기하자면 ‘따로 또 같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이 주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각기 다른 악기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곡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영화 내에서도 주제가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장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이런 감정을 표현하면 중 2병이니 허세니 자기 연민이니 해서 입 밖으로 내뱉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문라이즈 킹덤>의 샘과 수지가 바로 이런 아이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무도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샘 역시 캠프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고 수지 역시 친구가 없습니다. 특히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품어줄 깜냥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조금 특별한 그들의 감수성을 존중합니다. 영화 종반부, 그러니까 끝내 교회 종탑까지 내몰려 대홍수 속에서 노아의 방주에 승선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이들에게 샤프 소장은 손을 내밉니다. 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니, 애초에 이해할 수도 없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샘이 떨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행동, 이것만큼 진솔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행동이 어디있겟습니까. 때문에 이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웨스 앤더슨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줍니다. 남다른 샘과 수지를 내쫓지도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시키지도 않습니다. 수지 가정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고 영화 속 어른들이 이전과 달리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삽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완벽한 조화, 해결은 없습니다. 대신 그는 모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긍정합니다.

이렇게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 특유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캐릭터들을 대하는 무심한 듯 따뜻한 태도와 울림이 있는 이야기가 잘 결합되어 시너지를 발휘하는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별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식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 그만큼 강력한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음 영화가 별반 다르지 않을 걸 알면서도 벌써부터 몹시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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