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 프로젝트 - 기분 좋은 농담 같은 영화 트렌치코트


 하정우는 백상 예술 대상 시상식장에서 하지원의 ‘또 상을 받게 될 경우 대국민 앞에 공약을 세워주세요.’라는 농 섞인 요구에 국토대장정을 가겠다고 답을 합니다. 물론 이 역시 농담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알려진 대로 하정우 배우의 2년 연속 수상이었고 그렇게 그는 국토대장정을 떠나게 됩니다.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잘나가는 하정우라는 톱스타가 기왕 국토대장정을 하기로 했는데 이를 그냥 개인적인 이벤트로 끝내긴 아까웠나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대세인 공효진과 하정우와 친분이 있는 배우들, 오디션을 통해 뽑힌 배우들이 합류하게 되었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토대장정이라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좀 어중간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극한의 도전이라기엔 도전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성공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여행처럼 마냥 즐기기엔 육체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니까 국토대장정의 고단함을 보여주기엔 그 강도가 영화적으론 좀 약하고 인물 간의 화학작용을 보여주기엔 다들 걷는 거 자체만도 버거운 상황인 겁니다. 결국 이 영화는 딱 이 한계선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데 실제 결과물도 그렇습니다. <577 프로젝트>는 국토대장정의 고단함. 주로 누군가 다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과 짬짬이 만들어내는 예능. 하숙쇼, 몰래카메라, 막간 광고를 비롯한 이런 저런 장난들이 적당히 섞여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인물들 간에 자연스럽게 생겼을 드라마가 더해지면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졌을 겁니다. 20여일의 대장정 기간 중 이런 드라마가 전혀 없지도 않았을 거고 영화 속에도 조금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특정 드라마를 보여주기엔 인물들이 워낙 많습니다. 16명이 투입되면 더 많은 캐릭터와 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거라 생각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인물 수에 비례해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 게 아니라 몇 몇 인물을 빼곤 한 무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577 프로젝트>는 농담으로 시작된 배우들의 국토대장정을 끝내 매력적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정우는 예의 그 능글맞음으로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정우의 꼬임에 넘어간, 피해자 느낌의 공효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연기할 때 보여줬던 매력을 잃지 않습니다. 특유의 쿨한 톤으로 주저리 주저리 투덜거리는 모습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아침드라마의 장동건이라는 이지훈이 보여주는 장난 끼 넘치는 모습도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또 배우라기에는 가까운 한성천은 이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이 프로젝트에 임한 대원인데 영화 내내 두드러지지 않다가 중후반, 마치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몰래카메라 장면에서 중점적으로 부각이 됩니다. 그가 보여주는 절박함은 드라마가 부족한 이 영화에 기억에 남는 드라마를 만들어줍니다.

 연출도 애초에 진지함보다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영화답게 진중함보다는 개구진 태도로 국토대장정의 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편집 템포도 빠르고 중간 중간 나오는 광고을 비롯한 엉뚱한 장면들은 지쳐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쳐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리며 이 영화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장치들입니다.

 결국 이들은 국토대장정에 성공합니다. 577km를 걸어왔지만 그 끝에는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진 않습니다. 인물들도 억지 감상을 말하기 보단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카메라 역시 괜한 감동을 주려고 인물들 옆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577 프로젝트>는 감동이나 드라마에 대한 강박보다는 편안하게 이들의 여정을 보다 재미있게 담아내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와 산발적이지만 재미있는 장면들, 인물들의 매력이 어우러져 포복절도할 정도는 아니지만 피식 웃게 되는 기분 좋은 농담 같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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