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건 탐정사무소 - 불균질한 매력 트렌치코트


 <이웃집 좀비>, <에일리언 비키니>를 제작한 영화 창작집단 키노 망고스틴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영건’이란 이름의 탐정이 주인공입니다. 사실 한국에는 경찰과 수사를 공조할 수 있는 탐정은 없습니다. 대신 변호사의 위임을 받아 자료 조사등을 할 수 있는 탐정 ‘비슷한’, 민간조사원은 존재합니다. 영건이 바로 이 민간조사원입니다.

 탐정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셜록 홈즈 류에 추리물은 아닙니다. 복잡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는 필름 느와르풍도 아닙니다. 그나마 가까운 영화가 캐릭터 중심의 액션물인 가이 리치판 <셜록 홈즈>인데, 보시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호쾌한 액션도 없을 뿐더러 헐리웃 특유의 매끈함과 느끼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기존 장르 법칙의 전복을 꿈꾸며 난장을 벌이는 B급 영화도 아닙니다. 뭐라고 소개하기 참 애매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애매함이 바로 <영건 탐정 사무소>의 진정한 개성입니다.

 시작은 그럴 듯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주류 장르 영화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앞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될 사건의 일부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영건이 자잘한 사건을 하나 해결하자 묘령의 여인이 사건을 의뢰하러 옵니다. 전형적인 도입부입니다. 그런데 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프롤로그 속 악당은 정말 냉혹합니다. 안톤 시거가 따로 없습니다. 장면 연출도 굉장히 진지합니다. 곧 이어 앞 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분위기의 영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담스 패밀리스러운  외양을 한 여성의 의뢰를 받습니다. 장수풍뎅이를 찾아달라는 의룁니다. 황당한 의뢰지만 영건은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고 쉽게 사건을 해결합니다. 물론 무릎을 칠만한 기지 같은 건 발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괴기한 분위기의 ‘의식(?)’ 장면도 목격합니다. 뒤이어 영건을 찾아온 묘령의 여인은 사람을 죽여 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 영건은 의뢰를 거부하지만 그 여인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고로 죽자 사건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그 묘령의 여인이 느와르 영화의 전형적인 팜므 파탈처럼 보이긴 하는데 후드티를 입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모자도 뒤집어썼습니다. 좀 이상합니다.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로 묶이지 않고 서로 어긋나 있습니다.

 <영건 탐정 사무소>는 이렇게 불균질한 초반부의 분위기를 계속 따라갑니다. 심각함과 엉뚱함, 과잉과 소박함이 한데 뭉뚱그려져 있습니다. 보통 이런 불균질함은 단점이 될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점 입니다. 이유는 이 불균질함이 균질함을 지향하다가 실패해서 나타난 결과물이 아니라 애초에 밀도에 대한 강박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진 창작자들의 태도가 묻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건 탐정 사무소>의 이야기는 일체의 설명이 배제되어있습니다. 영화는 사건에 휘말린 영건과 송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그들을 따라가면서 그 상황에서 벌이질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그럴듯한 격투도 하고 추격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약간의 추리도 합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결국은 캐릭터가 핵심인 이 영화가 주인공인 영건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건은 꾸며지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한 쪽 손이 없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특별한 버릇, 습관 등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개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개성은 설정된 것이 아니라 영건을 연기하는 홍영근 배우가 가진 개성입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물에 대한 강박에 의해 만들어진 설정보다는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을 즐기는 만든 이들의 취향과 태도가 영화에 잘 묻어나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창작자들이 여기서 이거 넣으면 재밌있게다고 키득거리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물론 창작물은 결과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이 창작과정 중에 불행하다면 그 결과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결과물이 삶의 중요한 변수이긴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창작자가 살아가는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차적으로 내가 즐거워야 합니다. 키노 망고스틴은 이 분명한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집단이고 <영건 탐정 사무소>는 이들의 이런 태도가 잘 반영되어있는, 꽉 짜여있진 않지만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덧글

  • 2012/08/31 15:5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01 02: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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