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 계곡의 혈투 - 폐광촌의 총잡이들 트렌치코트

 한국형 웨스턴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서부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카우보이나 보안관등의 특정 장면이나 코드를 연상합니다. 하지만 서부극도 그 역사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 장르의 대표 작가인 존 포드의 작품만 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집니다. 또 프로페셔널들이 등장하는 하워드 혹스의 서부극,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표되는 마카로니 웨스턴,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세련된 느낌의 안소니 만 표 서부극도 있습니다. 공간도 그렇습니다. 서부극하면 상상하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나오지 않는, 실내극에 가까운 <쟈니 기타>같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옥스보우 인서던트>도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합니다. 로버트 알트먼의 <맥케이브 앤 밀러 부인>에 이르면 하얗게 눈이 쌓인 개척지가 주 무대로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때문에 <철암계곡의 혈투>를 단순히 서부극이라고 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서부극을 지향하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고맙게도 이 작품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고 있습니다. <웨스트>의 줄거리를 조금 수정하면 <철암 계곡의 혈투>의 줄거리가 될 정도입니다.

 복수를 하려는 주인공이 복수 대상이 있는 공간에 등장합니다. 그 악당은 하반신 불구인  자본가의 사주를 받아 특정 땅에 사는 사람들을 몰아내려 그들을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무법자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웁니다. 살해당한 사람들의 가족인 여자와 주인공, 누명을 쓴 무법자가 연대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복수를 진행해 나가다가 한 번 붙잡히지만 악당이 부재한 사이 탈출에 성공하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악당과 1대 1로 마주섭니다. 주인공이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악당에게 주인공은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주고 둘은 최후의 결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결투 장면은 과거 장면과 교차되어 보여 집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다리오 아르젠토, 세르지오 레오네라는 세 명의 거장이 각본에 참여한 <웨스트>는 ‘구원(舊怨)’을 해결하려는 총잡이와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과정을 장중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무대를 옮기면 이렇게 미국의 특정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주제까지 가져오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이 작품이 <웨스트>로 대표되는 총잡이들의 터프한 매력과 황야가 주는 정서적 질감을 어떻게 한국화 시키느냐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공간입니다. 감독은 광활한 대지 대신 강원도의 폐광을 선택했습니다. 폐광촌의 질감을 굉장히 훌륭합니다. 폐광촌의 황량한 느낌과 황야의 흙먼지 부럽지 않은 석탄 가루는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의 예산이 지극히 적어서 특별한 세트 제작이나 미술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더 탁월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 공간에 한국의 총잡이들이 들어섭니다. 복수를 꿈꾸는 철기는 말 대신 오토바이를, 총 대신 네일 건등의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다닙니다. 부츠와 스카프도 잊지 않습니다. 과묵하고 강렬한 눈빛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 설정도 재미있습니다. 악당들은 기본적으로 철거 용역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철기 역시 철거민이었습니다. 악당들은 개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폐광촌에 들어왔습니다. 철도를 놓기 위해 농장 주인을 죽였던 헨리 폰다처럼 이들 역시 개발 논리를 등에 업고 자본가의 부의 축적을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씁쓸한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영화에는 잘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이 다음입니다. 바로 귀면 일당이 50만원을 받고 일한다는 점. 너무 어리석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을 하고 고작 50만원을 받다니요. 하지만 이 설정은 서부극의 본질과 연결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 돈의 세계에 속한 것 같았던 귀면이 총잡이 세계의 인물임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본가를 위해 일 하지만 결국 돈을 쫓는 사람이 아닌 총잡이의 논리에 움직이는 악당입니다. 귀면은 결코 교묘하게 착취하며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로서 귀면과 철기는 표면상으론 대립하지만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게 되고 귀면은 자신의 고용주와 대립되는 세계에 섭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일전에 <웨스트>를 보고 모 평론가에게 왜 헨리 폰다를 비롯한 서부극의 악당들은 새로운 시대에 자본가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지 못하고 총잡이인 상태로 죽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아마도 서부극을 만드는 감독들이 총잡이들에게 어떤 로망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악당이지만 총의 룰에 사는 사람들. <웨스트>의 헨리 폰다나 이 영화 속 귀면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악당인 것입니다.

 이렇게 <철암 계곡의 혈투>는 레오네 식 서부극을 꽤 성공적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 점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던 영화에서 갑자기 철기가 증발해 버리는 순간도 있고 도드라진 개성을 부여하려다가 도리어 지나치게 단순해져 어색한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태연 캐릭터는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합니다. 액션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더 돈을 들였거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특정 장르를 페스티시하는 많은 작품들이 시각적 기호들만 가져오다가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비해 <철암 계곡의 결투>는 서부극의 정서적인 면도 잘 표현해냅니다. 서부극이 지극히 미국적인 장르여서 타국에서 만들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평가 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기억해야 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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