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머스트 고 - 어떤 기운 트렌치코트


 레이먼드 카버의 10페이지 남짓 되는 단편, ‘Why Don't You Dance?’ (국내 번역 제목은 <춤 좀 추지 그래?>)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원작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답게 별다른 상황 설명이나 기승전결은 없지만 모호함과 담백한 문장 행간에서 나오는 공기의 정서적 효과가 강력합니다. 척 봐도 장편화하기 어려운 스타일 입니다. 그래서인지 장편 영화화된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은 3편 밖에 없습니다. 그의 명성에 비한다면 적은 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브리씽 머스트 고>는 이 까다로운 원작을 수많은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각색합니다. 원작에서 아무런 배경 설명이 없었던 중년 남자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부여받습니다. 소설 속 실질적인 화자였던 소년, 소녀는 한 소년으로 대체되고 이외의 주인공 닉의 친구, 동창생, 앞집 임산부등 새로운 인물이 추가 됩니다. 에피소드들도 거의 다 새로 만들었다고 봐야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카버의 소설에서 아이디어만 가져온, 원작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을 맡은 윌 페렐은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코미디 배우입니다. 왠지 해고당하고 집에서까지 쫓겨난 위기의 중년 남자가 나오는 헐리우드식 휴먼 드라마가 펼쳐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자장 안에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장편 영화이지만 공간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이야기는 거의 닉의 마당에서 이루어집니다. 인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작에 비해서야 캐릭터에 이름도 생기고 여러 디테일들이 추가가 되었지만 일반적인 극영화에 비하면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매우 적은 편입니다. 에피소드들 역시 극적이지가 않습니다. 충분히 극적일 요소들이 많음에도 말입니다. 결말은 어떻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제로 엔딩입니다. 인물이 큰 깨달음을 얻거나 하는 일도 없습니다. 착 가라앉은 듯 하지만 따스하게도 느껴지는 화면 톤과 앞으로 나서지 않는 카메라도 이 작품의 다른 요소들과 같은 소실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요소들이 극소화되다보니 자연히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의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닉을 연기하는 윌 페렐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 어울리는 담백한 스타일로 연기합니다.

 <에브리씽 머스트 고>는 이렇게 스스로가 세운 전제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잔잔하고 담백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무기력한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면상으로 잔잔하게 그려질 뿐 주인공 내면에선 폭풍이 몰아칠 상황들도 많고 나름대로 곳곳에 유머도 배치 되어있어 영화의 호홉을 차분히 따라간다면 음미할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특히나 닉이 주변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 장면의 대사들은 인상적인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닉의 미래를 제시해주지 않습니다. 그의 삶은 막막해 보입니다. 하지만 닉은 자신의 ‘소유’했던 물건들을 판다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이 잃기 싫었던 것들을 잃었던 한 시기를 떠나보냅니다. 버텨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소녀는 중년 남자에게서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소녀는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 강렬했던지 친구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아마 이 영화도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운은 강한 인상을 가진 거구의 남자의 무표정에서,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독특한 정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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