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 - 김일란, 홍지유 트렌치코트

 

 2009년 1월 19일에 일어난 용산 참사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벌써 3년이 지난 사건입니다. 그 사이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들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또 용산이고, 왜 지금인가?’ 그 사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을 수도 있습니다. 용산 참사와 관련한 새로운 사건이 추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3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으로 해당 사건을 재조명해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특별한 이유 없이, 어쩌다 보니 지금 완성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개의 문>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 이외에 대단히 새로운 정보를 전해주진 않습니다. 법원의 최종 판결도 이미 2010년 10월에 내려졌습니다. 용산 참사를 다루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말 어쩌다 보니 지금에야 만들어진 영화일까요?

 이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취재형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두 개의 문>은 상당량의 기존 기록들을 재구성해 만든 ‘기록물’입니다. 이 가운데 사건 당시 영상들과 재판 당시 녹취 자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철거민이나 유족들의 진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의아한 선택입니다. 우리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일 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감정의 표면에서 불붙는, 휘발성 강한 분노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건 당시 남일당 건물을 보여주는 영상은 멀찍이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립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들의 법정 진술은 당연히 철거민들과 대립하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니까 멀찍이서 찍은 영상들을 계속 들여다보고 상대편의 말을 아무리 들어보아도 이 참사가 무리한 진압 때문에 ‘만들어진’ 비극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논리 전개는 대단히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철거민들의 직접적인 증언이 없어도 그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문>의 또 다른 특징은 경찰 특공대대원들의 높은 비중입니다. 경찰 측에서 촬영한 현장 영상과 경찰들의 법정 진술을 통해 관객은 그들이 느꼈던 공포를 봅니다. 유독 가스와 연기 속을 헤치고 망루로 들어가야만 하는 그들의 모습은 비극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진술하듯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훈련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도로 훈련된 그들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불나방처럼 비극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기 위해 경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 계급 피라미드 아래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어떻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두 개의 문>은 이렇게 우리가 정말 분노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적 재미도 있는 작품입니다. 이는 꼼꼼하게 설계된 촘촘한 구성 덕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영화적 힘은 바로 현장 영상에서 나옵니다. 인터넷 방송들과 경찰 측 영상, 당시 무전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현장 상황은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달려가면서 관객에게 대단한 긴장감을 줍니다. 이는 실제 사건을 다룬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93>가 고도의 핍진성으로 전달했던 긴장감, 몰입감과 비슷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 속에서 스펙타클의 쾌감을 느낀다는 건 분명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면이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고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흐름에 밀착해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서두에서 했던 질문의 답이 나왔습니다. <두 개의 문>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결이 단단한 주장을 하는 영화입니다. 또한 만드는 사람은 무한대에 가깝게 느껴질 수많은 기록을 붙들고 씨름해서 재구성하는 과정은 분명 일정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용산 참사 이후 3년이 지난 도착한 <두 개의 문>은 이렇게 발바닥 힘이 아닌, 엉덩이의 힘으로 탄탄한 논리를 구축해 그날 불탔던 망루처럼 관객의 마음에도 불을 지르고야 마는 힘 있고 밀도 높은 다큐멘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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