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대작 킹스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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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 - 방주에 올라타기 트렌치코트

웨스 앤더슨의 7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캐릭터, 분위기, 편집 리듬, 카메라 앵글, 프로덕션 디자인에 기반을 둔 작품을 만드는 감독입니다. 때문에 팬도 많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마틴 스콜세지도 극찬했던 <바틀 로켓>으로 데뷔해 <러쉬모어>, <로얄 테넨바움>을 만들면서 평단의 지지와 자신의 마니아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다소 산만했던 <스티븐 지조의 해저 생활>을 거쳐 <다즐링 주식회사>에 이르면 그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됩니다. 특히 <다즐링 주식회사>는 웨스 앤더슨의 아기자기한 스타일만 남고 이야기는 공허하게 처리된 느낌이 들어 그가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작품 세계가 여전히 매력적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영적이고 심오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감독이 아닙니다. 그의 매력은 독특한 인물이 만들어가는 엉뚱한 사건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극대화해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이는 <문라이즈 킹덤>을 통해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역시 거창한 주제를 가진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편의 소동극입니다. 웨스 앤더슨식의 엉뚱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해 엉뚱한 계획을 세웁니다. 샘과 수지의 계획은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10대 초반의 소년, 소녀가 단 둘이 어디가서 어떻게 살겠다는 겁니까? 실제 영화에서도 그들이 탈출 이후 어떻게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10대 아이들을 데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할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텐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관건입니다.

이 작품은 예측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자세히 말하면 이야기의 큰 틀은 예측 가능해도 디테일들은 예측 불허입니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디테일들에 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은 한 장면 한 장면 캡쳐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질 정도로 예쁜 장면들이 많습니다. 인물들의 행동도 절묘한 음악도 매력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마 이 작품을 말할 때 수없이 나오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스 앤더슨은 원래 이런 게 특기인 감독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장기는 그가 작은 이야기를 할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앞서서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이야기라고 해서 정서적인 감흥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스케일과 주제와 상관없이 그 작품이 전달하려고 했던 정서적인 감흥이 수반되지 않으면 감독의 코드들은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제겐 <다즐링 주식회사>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렇다면 <문라이즈 킹덤>이 훌륭한 이유는 ‘웨스 앤더슨 코드’ 때문만은 아닙니다. 단순히 인물과 사건들이 귀엽고 화면의 색감이 예쁘고 인물을 대각으로 잡지 않는다고 영화가 훌륭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웨스 앤더슨이 특정 주제에서 출발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서적 응집력을 만들 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 역시 굳이 이야기하자면 ‘따로 또 같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이 주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각기 다른 악기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곡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영화 내에서도 주제가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장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이런 감정을 표현하면 중 2병이니 허세니 자기 연민이니 해서 입 밖으로 내뱉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문라이즈 킹덤>의 샘과 수지가 바로 이런 아이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무도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샘 역시 캠프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고 수지 역시 친구가 없습니다. 특히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품어줄 깜냥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조금 특별한 그들의 감수성을 존중합니다. 영화 종반부, 그러니까 끝내 교회 종탑까지 내몰려 대홍수 속에서 노아의 방주에 승선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이들에게 샤프 소장은 손을 내밉니다. 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니, 애초에 이해할 수도 없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샘이 떨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행동, 이것만큼 진솔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행동이 어디있겟습니까. 때문에 이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웨스 앤더슨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줍니다. 남다른 샘과 수지를 내쫓지도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시키지도 않습니다. 수지 가정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고 영화 속 어른들이 이전과 달리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삽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완벽한 조화, 해결은 없습니다. 대신 그는 모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긍정합니다.

이렇게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 특유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캐릭터들을 대하는 무심한 듯 따뜻한 태도와 울림이 있는 이야기가 잘 결합되어 시너지를 발휘하는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별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식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 그만큼 강력한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음 영화가 별반 다르지 않을 걸 알면서도 벌써부터 몹시 기다려집니다.


세션 -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 트렌치코트


영화의 주인공 마크 오브라이언은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얼굴 근육 밖에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크는 소위 말하는 뇌가 섹시한 사람입니다. 다정하고 유머감각도 있습니다. 특히 유머 감각은 그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방패이자 무기입니다. 이런 그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섹스를 해보는 것입니다.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그는 내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외적인 장애로 인해 진한 연애도 못해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사에서 ‘장애인의 섹스’라는 기사 의뢰가 들어오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는 섹스테라피스트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관객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마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섹스를 나누는 일은 쌍수 들고 환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애인을 만들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섹스테라피스트의 존재는 무언가 석연찮습니다. 성매매와 성치료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부터 해서 온갖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물론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가닥이 너무 그쪽으로만 흐르게 되면 이 영화의 노선에서 탈선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논쟁적일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섹스테라피스트와 이와 관련된 윤리적 고민들을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벤 르윈 감독은 자신의 논평을 배재하고 영화의 원작이 된 마크 오브라이언의 경험담을 전달하는데 집중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멋들어지게 힘 준 쇼트들도 거의 없고 지나치게 극적인 구성을 취하는 부분도 없습니다. 대신 영화를 철저히 장애인 마크가 아닌 인간 마크와 그의 주변 사람들로 채웁니다.

이런 태도는 마크를 찍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마크 캐릭터는 극작술 측면에서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확실한 특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신체의 부자유스러움입니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그의 이런 면은 영화에서 부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그 캐릭터의 무기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몸을 잘 비춰주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의 얼굴 클로즈업을 높은 비중으로 사용합니다. 그의 몸에 집중하지 않음으로 마크 캐릭터는 특수하지만 관객에게 타자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의 몸을 비추며 시각적, 정서적 자극을 높이는 대신에 관객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다가가게 만들며 관객과 마크 캐릭터를 밀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도 마크가 셰릴를 만족시킴으로 자신의 성적 능력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셰릴과의 교감을 통해 마크가 누이에 대한 죄책감을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션>의 감동은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불쌍한’ 캐릭터에 대한 연민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마크처럼 다양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이는 관계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마크로 대표되는,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상처받고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이를 극복한다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판타지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 과정을 작위적이지 않고 진실 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제대로 된 감동과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볼 때 마크를  타자화시켜 바라보거나 섹스테라피스트와 관련된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면 보편성을 내포한 작품의 소재들의 표면에만 머무는 우를 범하게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 물론 특수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서두에 언급했던 질문들이 따라 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조경덕 감독의 2010년 작품인 <섹스 볼란티어>를 한번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장애우들의 성 문제, 그리고 섹스 자원 봉사에 대한 윤리적 고민들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2012 Best 영화 트렌치코트

2013년이 오고야 말았네요. 앞으로 <문명> 할 때 마야 문명 따윈 안 할 겁니다. 작년에는 서울로 이사도 오고 무비꼴라쥬 관객프로그래머 활동도 해서 영화 보기를 게을리 했던 최근 몇 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영화들을 봤습니다. 그래도 놓친 작품들이 많네요.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분야는 개봉영화 Best, 비개봉영화 Best, 단편영화 Best로 나눠봤습니다. 아마도 꽤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개봉 영화 Best (무순)


1.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형제와 동시대에 살면서 이들의 신작을 개봉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는 상투적인 찬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이들의 영화는 위대합니다. 뛰어난 각본, 연기. 인물과 삶을 대하는 태도, 엄정한 형식미가 어우러져 또 한편에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됐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강력한 여운도 여전합니다. 갈 길이 머니 더 말을 보태는 것 보다 이 영화에 대해 비교적 길게 쓴 글 있으니 읽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alma70.egloos.com/13770


2. 디센던트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휴먼 드라마에 그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알렉산더 페인은 <사이드웨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하지만 끈질기게 인물이 인생의 한 지점을 통과하는 쫓아갑니다. 조지 클루니의 연기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3.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을 정말 좋아해 많은 기대를 했던 작품입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은 출중한 연출력으로 복잡한 원작의 이야기와 감정선들을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잡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각본에 의지하기 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미장센으로 말입니다. 올해 가장 근사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치콕의 <레베카>의 창고 장면을 인용한, 카를라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 대신 텅 빈 공간을 비춰 그 공간을 카를라의 기운으로 가득 채우는 스마일리의 독백 장면도 압권입니다. 


4. 토리노의 말

이런 저런 해석을 하지 않아도 스크린 속의 이미지 자체만으로 황홀함을 느끼게 해주는,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작품입니다. 광풍이 몰아치는 언덕을 비추는 익스트림 롱 쇼트에서 화면 저 멀리의 나뭇가지까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알고 보니 헬기까지 띄어서 촬영한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한 예술가의 비전을 끝까지 몰아붙여 완성된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압도적인 아름다운이 있는 위대한 영화입니다.


5. 멜랑콜리아

압도적인 초반 시퀀스로 속된 말로 조지고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아쉬움은 있지만 뛰어난 연출과 연기가 훨씬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신경질적이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묘한 카타르시스와 우주적 공포가 동시에 느껴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강렬함도 압권입니다.


6. 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는 눈에 보이는 연출을 즐기는 감독입니다. <쥐잡이>에서 아버지가 칼에 맞는 장면을 딸기 시럽이 흐르는 장면으로 대체한다던지 <케빈에 대하여> 틸단 스윈튼과 존 C. 라일리의 동침 장면에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붉은 색으로된 전자 탁상 시계가 12시 1분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연출은 자칫하면 유치해 보일 수 있는데 린 램지는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밖에도 언매치한 듯 한 음악의 사용과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 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악마에 가까운 아이 앞에서 무기력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탁월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아즈라 밀러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 늑대아이

'늑대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소녀와 어머니, 인간과 늑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소녀이면서 어머니이고 늑대이며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랍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하나가 아메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감정은 최고조에 달하는데 떠나보내기 죽도록 싫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아메를 보내는 하나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음악, 작화, 캐릭터, 삶을 바라보는 태도 모두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8. 우리도 사랑일까

인물의 순간적인 감정을 놀라운 정도로 예민하게 포착해내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통찰도 함께 해내는 영화입니다. 사라 폴리의 연출력과 미쉘 윌리암스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두 번의 놀이공원 장면, 인력거 장면, 카페에서 말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 등등 인상적인 장면이 정말 많았던 작품입니다. 리뷰 링크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nickname&sword=2738803&nid=2738803


9. 롱 폴링

본 사람이 거의 없어 안타까운 작품입니다. 한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변수에 그들이 반응하고 극복하려는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마르탱 프로스트의 절묘한 솜씨와 욜랭드 모로의 연기에 힘입어 얼핏 보기엔 잔잔하지만 실제로는 날카롭고 풍부한 늬앙스를 풍기는 영화입니다. 리뷰 링크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nickname&sword=2738803&nid=2754114


10. 심플라이프

죽음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와 한 사람을 정중히 떠나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유덕화와 엽덕한의 편안한 연기도 정말 훌륭합니다. 인간의 삶은 단순합니다. 태어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먹고 일하고 자다가 죽습니다. <심플 라이프>는 이 단순한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에 대한 존경을 표합니다. 특히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영화를 본지 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병원 로비에서 홀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던 로저의 모습과 아타오의 관 앞에서 90도로 인사하는 킨의 모습이 계속 떠오릅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선 죽음에 대해 가장 정중한 태도를 가진 영화입니다. 리뷰 링크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page=1&st=nickname&sword=2738803&nid=2789279


한국 영화, 외국 영화로 나누지 않고 뽑다 보니 한국 영화가 하나도 없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음, 한국 영화도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베스트 목록을 뽑을 때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좋았던 영화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내 아내의 모든 것>, <남영동1985>, <밍크코트>, <범죄소년>, <투 올드 힙합 키드>, <다른 나라에서>. 모두 의미있고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비개봉작 Best (무순)

주로 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작품들입니다.


1. 얼굴들

존 카사베츠! 올해 가장 큰 수확입니다. 이전에도 한 두 작품 정도 보고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존 카사베츠 기획전을 통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두 시간 넘게 술 먹고 헛소리하는 게 대부분인 영화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삶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공허를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합니다. 때문에 그들의 주사는 그래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상황은 바닥까지 악화되지만 이 최악의 상황에서 묘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김영진 평론가님의 말씀처럼 ‘이것보다 더 나빠지겠어?’식의 희망 말입니다. 인물들의 몸부림을 두 시간 넘게 같이 체험하고 느끼는 이 감정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2. 영향 아래 여자

이 작품 역시 카사베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 닉과 메이블, 하지만 메이블은 정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노력하지만 답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 한 가닥 품었던 희망마저 사라지고 상황은 절망적으로 바뀌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을 한바탕 난리로 어질러진 집을 함께 정리합니다. 매우 감동적이고 여운이 긴 장면입니다. 지나 롤랜즈는 카사베츠표 로맨틱 코미디 <별난 인연>에서 보다 더 사랑스러운 모습과 <오프닝 나이트>에서 보다 더 예민하고 불안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놀라운 연기를 펼쳐 보입니다.  


3. 아버지의 이메일

이번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홍재희 감독 본인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를 한 발 물러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으로 바라보며 탐구합니다. 이 탐구는 도대체 내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나하는 절규에서 시작된 탐구이기 때문에 그 절실함이 남다릅니다. 개인적으로 거창한 주제를 가진 영화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내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4. 청춘의 십자로

영상자료원에서 주최하는 변사 공연으로 본 작품입니다. 사실 요즘 관객에게 <청춘의 십자로>라는 영화 자체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당시 경성의 모습을 보는 재미 정도만 있습니다. 하지만 변사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정말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의 관객이 된 느낌이 듭니다. 좋은 극장이 아닌 상대적으로 허름한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에서 봐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뮤지컬 형식까지 끼어들면 마치 미래지향적인 하이브리드 극을 보는 느낌까지 듭니다.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변사를 맡은 조희봉 배우도 최고였습니다.


5. 최후의 증인

이두용 감독 특별전으로 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온갖 자극과 트릭에 익숙한 지금 관객에게 스릴러 장르로서 어필하긴 힘듭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진실을 밝히겠다는 주인공의 의지와 이 의지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주인공의 발걸음으로 실현될 때의 감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인물들의 정서를 끝까지 몰아쳐 표현하는 연출에 있습니다. 보고나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영화입니다. 특히 인물의 감정을 뮤지컬처럼 창으로 표현하는 과감한 장면과 라스트 씬이 압권입니다.


단편 영화 Best (무순)

국내 최대 단편 영화제인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 수가 800편이 넘습니다. 그만큼 단편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는 이야긴데 이쯤 되면 단편 영화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경쟁 영화제 이외에 소규모 상영회에 가까운 비경쟁 영화제, 홍대 등지에서의 각종 상영회들로 그 저변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단편 영화들을 보았는데 이를 중심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 몇 개를 추려 보겠습니다.


1. 숲

미장센 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라 기대치가 높았음에도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대단한 영화입니다. 상업영화 안 부러운 기술적인 완성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배우의 매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gv 때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도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건지 감이 안 잡히는 화려한 숲 속 클라이맥스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엄태화 감독은 테크닉이 뛰어난데 이를 남용하지 않고 적절하게 쓸 줄 아는 감독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엄태구 배우는 감독의 친동생으로 선 굵은 외모와 허스키한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를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뷰 링크입니다.

http://siff.tistory.com/45


2. 돌아가는 관람차

놀라운 감흥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딱 봐도 루저인 민현과 그의 연연인 세례의 울산 여행을 통해 재개발의 풍경과 경쟁사회에서 낙오한 인물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솜씨가 지아 장커의 <소무> 안 부럽습니다. 민현과 세례 캐릭터의 매력도 훌륭합니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사를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이 싸울 때조차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두 사람 앞에 선물처럼 나타난 대관람차의 모습도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리뷰 링크입니다.

http://siff.tistory.com/63


3. 영아

<은교>로 올해의 신인으로 떠오른 김고은 배우가 출연하는 단편 영화입니다. 친하지 않은 고교 동창의 장례식장에서 부조금을 훔치는 비루한 청춘인 주인공의 판타지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막연한 죄책감과 자기 연민이 영화적으로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되어있습니다. 또 판타지 속 장면들의 결합과 디테일들도 뛰어납니다. 여기에 김고은 배우의 매력까지 더해지면 영화는 굉장히 매혹적인 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마음을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4. 해운대 소녀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무려 대상을 차지한,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화입니다. 최상급의 시나리오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카메라 사이즈, 미장센, 호흡 모두가 완벽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탁월한 작품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 쯤 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해소됩니다. 아이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다. 영화 내내 이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같이 고정되어있던 카메라가 빠르게 틸트 업을 하다가 덜컹하고 흔들립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아찔한 흔들림입니다. 이 영화의 이정홍 감독은 올해 <반달곰>이라는 47분짜리 단편으로도 주목 받았는데 20대 룸펜의 일상을 그린 이 영화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영화의 소재에 따라 자유자재로 러닝타임과 연출 스타일을 달리하는 이정홍 감독, 눈 여겨 봐야할 감독인 것 같습니다.


5. 불꽃놀이

이 작품은 이누도 잇신 마스터 클래스에서 이누도 잇신 감독이 최근 작업물이라며 틀어줬던 단편 영화입니다. 강의가 다 끝난 줄 알고 딴 짓 하다가 작품의 제작 계기 등은 놓쳤지만 영화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이 영화 절반 가까이는 주인공 아이의 춤 장면입니다. 춤추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하지만 이 춤은 마냥 재롱잔치 보듯 볼 수 없습니다. 이 춤은 어른들에 의해 자신의 생활과 소박한 꿈이 틀어져버렸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자기도 잘 살겠다는 아이의 의연함과 의지가 담겨있는 결연한 몸짓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나중에는 아이의 몸짓을 보다가 눈물이 날 지경에 이릅니다. 10여분의 영화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솜씨입니다.


로얄 어페어 - 궁중 멜로 드라마와 정치 드라마의 드라마틱한 만남 트렌치코트


지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연기와 각본으로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스웨덴 판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각본을 썼던 니콜라이 아르셀이 연출하고 알리시아 비칸데르, 매즈 미켈슨, 미켈 보에 폴스라르가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기본 틀은 전형적인 궁중 치정극입니다. 극중에도 잠시 등장하는 아더 왕의 심복 란슬롯과 기네비어 왕비와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유명합니다. 궁중의 화려한 의상과 세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이 작품 역시 이런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캐롤라인 왕비와 중후하고 지적인 왕의 주치의 요한 스트루엔시와의 사랑, 그리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괴짜 왕 세바스티안 7세의 관계는 꽤 흥미롭습니다. 왕실의 권력 다툼과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뒤틀린 성격을 가진 왕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한 요한에게 의지하며 그와 유사 부자 관계를 맺습니다. 그는 자기 부인인 캐롤라인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의회와 왕실의 압력에 의해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왕은 아이로 퇴행합니다. 그가 왕비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것도 그 스스로 자신이 누군가의 남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풀어주는 창녀와 부재하는 어머니로만 존재합니다. 이런 상처받은 영혼인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의 아내와 통정을 하니 영화의 분위기가 기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은 궁중 치정극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로얄 어페어>는 정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캐롤라인과 요한은 연인인 동시에 정치적인 뜻을 같이 하는 동지이기도 합니다. 캐롤라인이 요한에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도 그의 책장에 숨겨져 있던 계몽주의 사상 책들 때문입니다. 요한은 왕의 측근으로 궁에 들어와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한 개혁정치를 실행하려고 합니다. 많은 장애물이 뒤따르지만 그는 왕과 자신의 관계를 이용해 개혁을 밀어붙입니다. 당연히 그를 몰아내려는 세력의 음모가 생겨나고 결국 그는 제거됩니다. 이 영화의 정치 드라마가 흥미로운 것은 선한 의지를 가진 개혁가의 꿈이 기득권 세력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을 이분법적이고 단순하게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한과 왕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왕은 그를 아버지로 여기며 철저히 따릅니다. 요한 정도 되는 사람이 세바스티안 7세가 가진 상처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요한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위해 자신을 의지하는 왕을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질문이 많은 왕을 성가셔 하다가 왕을 몰아세워 자신의 직권으로 정책을 정할 수 있게 만드는 대목에서 이 의심은 강한 의혹으로 바뀝니다. 그의 개혁 과정도 합리적이기 보다 그가 그토록 경멸하는 절대왕정의 일처리 방식과 닮아있습니다. 자신이 말하면 그것이 그대로 법이 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영화에 풍부한 늬앙스를 불어넣습니다.

<로얄 어페어>는 이렇게 궁중 치정극과 정치 드라마를 한데 엮어 흥미진진하면서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인물의 내면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큰 몫을 합니다. 영화의 의상이나 세트도 궁중 이야기 치고는 화려함이 덜 하고 도리어 건조한 느낌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세바스티안 7세를 연기한 미켈 보에 폴스라르는 다소 과장되고 이상한 인물 이면의 나약함과 슬픔까지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요한 역의 매즈 미켈슨 역시 명성에 걸맞게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요한의 강인한 의지와 냉철함, 격정을 뛰어나게 표현해 냅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개혁은 실패하고 요한은 처형당한 상태에서 캐롤라인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편지로 남깁니다. 영화는 사실상 여기서 끝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아 결국 개혁을 완수했다는 자막이 올라오면 이 영화에서 느꼈던 좌절과 슬픔은 큰 위안과 희망으로 바뀝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어두운 방을 비춰줍니다. 그 방에 왕손들이 들어와 커튼을 젖히면 대사에서나 시각적으로나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였던 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 빛이 주는 감동은 실로 대단합니다. 역사상 한 번에 완벽하게 성공한 개혁은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꿈꿨지만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닙니다. 역사는 계속되고 다음 세대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역사를 바꾸는 것을 꿈꾸는 것보다 내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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